영어를 잘 하면 정말 부자가 될까
글 자체와 크게 관련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리 아리노리의 주장이 다소 빗나간 맥락에서 인용되고 있는 것 같아 혼자 주절주절 부연 (그러나 이오공감에까지 올라간 메이저 블로그에 트랙백을 보내다니 미쳤;;).
음 모리 아리노리의 소위 '영어의 국어화'론은 이리저리 내로라하는 사람들에게 잔뜩 두들겨맞았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연숙 선생님이 지적한 대로 그들 중 대부분은 '국어' 또는 '일본어'와 같은 민감한 어휘에 걸려 그 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무턱대고 행해진 것들에 가까웠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는 가정 하에, 간단히 적어보자.
모리 아리노리의 주장을 검토하기 전 우선 생각해야 할 부분은, 우리가 현대 '일본어'라고 부르는 언어체계가 확립된 것이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떠한 언어체계와 국가가 일치하게 되는 사고 과정 자체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살펴보려면 이야기가 길어지므로, 여기에서는 특별히 표기하지 않는 한 언어체계의 의미로만 사용하겠음). 다소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모리 아리노리 시절의 일본에는 '일본어'라고 간주할 수 있는 확정된 실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문어와 구어의 간격이라는 것은 어느 언어체계에서나 매한가지이겠지만, 당시 일본의 경우는 단순히 문어와 구어의 차이라는 점뿐 아니라 같은 구어의 레벨 안에서도 심각할 정도로 체계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이 없었다. 물론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언어들로 의사소통했지만 그것들은 입을 여는 순간 화자의 스테이터스status가 확연히 드러나는 수많은 '개별 발화들'이었고, 결코 근대 국가에서 상정하는 '하나의 균질적인 국어'라는 지위를 부여할 수 있을 만한 성질의 것들이 아니었다.
모리 아리노리가 보기에, 일단 언어의 일치조차 보지 못한 사회에서 근대화를 이룬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고, 일본이 지향해야 할 근대화라는 것은 결국 지구상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판단되)는 서양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번역 같은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영어를 '일본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삼으면 훨씬 용이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지였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나 이것은 현대의 영어공용어화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모리의 주장은 결코 '이미 멀쩡히 존재하는 국어를 폐기하고 영어를 가져다 쓰겠다'가 아니라, 애초에 통일된 언어적 실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다들 다른 말을 하고 있을 것이라면 아예 영어를 가져다 쓰면 어떻겠느냐'라는 요지로 보는 것이 맞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때까지 언어는 국가와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굳이 영어를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개별의 발화들' 중에서 어떠한 것 하나를 골라서 '일본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삼으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겠는데, 그것은 그것대로 또 그 수많은 대상군 중에서 어떠한 특정한 것을 '선택'한다는 문제가 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힘의 문제가 되기 마련이고, 실제로 현재 존재하는 '국어national language'의 성립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동시에, 선정에서 탈락한 다른 많은 발화체들은 한순간에 방언dialect으로 전락한다. 그러니까 '국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잘 포장해서 '국어' 개념의 핵심인 만고불변성, 즉 '이 땅에 살았던 (것 같은) 얼굴도 본 적 없고 나랑 피가 섞였는지도 알 수 없는 멀고먼 우리 조상들이, 그리고 얼굴도 볼 일 없고 나랑 피가 섞일지도 알 수 없는 멀고먼 우리 후손들이 세상이 시작되고 하늘이 열렸을 때부터 지금껏 사용해 왔고 또 앞으로도 사용할 것이 당연한 동일한 언어체계'라는 관념을 심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주제이고...
저 이야기를 하면서 모리 아리노리는 나름대로 영어의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개량하는 방안도 제시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지금 책이 손에 없어서 확실하지 않고...어쨌든 그렇습. 부러 지적하지 않더라도, 일본은 원래 '상류 계급과 하층 계급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diglossia 사회였다. 그래도 어쨌든 같은 일본어가 아니냐, 라고 한다면 아 네-_-
+ 덧붙이자면, 일본에서 모리 아리노리의 주장이 두들겨맞은 이후 번역 산업이 강화되었다고 말하는 것보다, 모리의 주장이나 이런저런 번역 열풍 모두 방향은 다르지만 하나의 통합된 실체로서의 '일본어'의 확립을 위한 각자 나름대로의 노력(이랄까 열정이랄까 발버둥?)이라고 말하는 쪽이 조금 더 나을 것 같다. 당시의 번역은 다른 말을 '일본어'로 옮기는 작업이라기보다, 다른 말을 옮겨낼 수 있는 '일본어'라는 대상을 새로 만들어내는 작업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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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면 좋을) 도서: イ・ヨンスク、『「国語」という思想―近代日本の言語認識』 (岩波書店, 1996)
한국어판도 있더라: 이연숙 지음, 고영진·임경화 옮김,『국어라는 사상: 근대 일본의 언어인식』 (소명출판, 2006)
글 자체와 크게 관련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리 아리노리의 주장이 다소 빗나간 맥락에서 인용되고 있는 것 같아 혼자 주절주절 부연 (그러나 이오공감에까지 올라간 메이저 블로그에 트랙백을 보내다니 미쳤;;).
음 모리 아리노리의 소위 '영어의 국어화'론은 이리저리 내로라하는 사람들에게 잔뜩 두들겨맞았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연숙 선생님이 지적한 대로 그들 중 대부분은 '국어' 또는 '일본어'와 같은 민감한 어휘에 걸려 그 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무턱대고 행해진 것들에 가까웠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는 가정 하에, 간단히 적어보자.
모리 아리노리의 주장을 검토하기 전 우선 생각해야 할 부분은, 우리가 현대 '일본어'라고 부르는 언어체계가 확립된 것이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떠한 언어체계와 국가가 일치하게 되는 사고 과정 자체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살펴보려면 이야기가 길어지므로, 여기에서는 특별히 표기하지 않는 한 언어체계의 의미로만 사용하겠음). 다소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모리 아리노리 시절의 일본에는 '일본어'라고 간주할 수 있는 확정된 실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문어와 구어의 간격이라는 것은 어느 언어체계에서나 매한가지이겠지만, 당시 일본의 경우는 단순히 문어와 구어의 차이라는 점뿐 아니라 같은 구어의 레벨 안에서도 심각할 정도로 체계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이 없었다. 물론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언어들로 의사소통했지만 그것들은 입을 여는 순간 화자의 스테이터스status가 확연히 드러나는 수많은 '개별 발화들'이었고, 결코 근대 국가에서 상정하는 '하나의 균질적인 국어'라는 지위를 부여할 수 있을 만한 성질의 것들이 아니었다.
모리 아리노리가 보기에, 일단 언어의 일치조차 보지 못한 사회에서 근대화를 이룬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고, 일본이 지향해야 할 근대화라는 것은 결국 지구상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판단되)는 서양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번역 같은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영어를 '일본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삼으면 훨씬 용이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지였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나 이것은 현대의 영어공용어화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모리의 주장은 결코 '이미 멀쩡히 존재하는 국어를 폐기하고 영어를 가져다 쓰겠다'가 아니라, 애초에 통일된 언어적 실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다들 다른 말을 하고 있을 것이라면 아예 영어를 가져다 쓰면 어떻겠느냐'라는 요지로 보는 것이 맞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때까지 언어는 국가와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굳이 영어를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개별의 발화들' 중에서 어떠한 것 하나를 골라서 '일본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삼으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겠는데, 그것은 그것대로 또 그 수많은 대상군 중에서 어떠한 특정한 것을 '선택'한다는 문제가 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힘의 문제가 되기 마련이고, 실제로 현재 존재하는 '국어national language'의 성립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동시에, 선정에서 탈락한 다른 많은 발화체들은 한순간에 방언dialect으로 전락한다. 그러니까 '국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잘 포장해서 '국어' 개념의 핵심인 만고불변성, 즉 '이 땅에 살았던 (것 같은) 얼굴도 본 적 없고 나랑 피가 섞였는지도 알 수 없는 멀고먼 우리 조상들이, 그리고 얼굴도 볼 일 없고 나랑 피가 섞일지도 알 수 없는 멀고먼 우리 후손들이 세상이 시작되고 하늘이 열렸을 때부터 지금껏 사용해 왔고 또 앞으로도 사용할 것이 당연한 동일한 언어체계'라는 관념을 심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주제이고...
저 이야기를 하면서 모리 아리노리는 나름대로 영어의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개량하는 방안도 제시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지금 책이 손에 없어서 확실하지 않고...어쨌든 그렇습. 부러 지적하지 않더라도, 일본은 원래 '상류 계급과 하층 계급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diglossia 사회였다. 그래도 어쨌든 같은 일본어가 아니냐, 라고 한다면 아 네-_-
+ 덧붙이자면, 일본에서 모리 아리노리의 주장이 두들겨맞은 이후 번역 산업이 강화되었다고 말하는 것보다, 모리의 주장이나 이런저런 번역 열풍 모두 방향은 다르지만 하나의 통합된 실체로서의 '일본어'의 확립을 위한 각자 나름대로의 노력(이랄까 열정이랄까 발버둥?)이라고 말하는 쪽이 조금 더 나을 것 같다. 당시의 번역은 다른 말을 '일본어'로 옮기는 작업이라기보다, 다른 말을 옮겨낼 수 있는 '일본어'라는 대상을 새로 만들어내는 작업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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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면 좋을) 도서: イ・ヨンスク、『「国語」という思想―近代日本の言語認識』 (岩波書店, 1996)
한국어판도 있더라: 이연숙 지음, 고영진·임경화 옮김,『국어라는 사상: 근대 일본의 언어인식』 (소명출판, 2006)
